


한겨레 | 입력 2009.06.19 08:30 |
[한겨레] [뉴스 쏙]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특정 분야에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분수와 인공폭포를 만드는 덕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수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긴 분수, 높이 100미터가 넘는 인공폭포…. 온갖 다양한 세계 최초, 세계 최대급 수경시설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 들어서는 분수와 인공폭포들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넘어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관광자원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다른 곳에는 없는 볼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다른 고장에도 똑같이 있는 비슷비슷한 분수와 인공폭포를 너도나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물을 이용한 공간과 볼거리를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광자원화 하기에는 차별성이 떨어지며 운영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한계절용·축제용 볼거리 위해
수십억∼수백억 들여 만들고
한달 유지비만 수천만원 '펑펑'
세계 최고·세계 최장·세계 최초…
'기록 경쟁'에 전시행정 눈살
시·국들 앞다퉈 인공폭포 조성도
분수 기록, 한국이 싹쓸이할 판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분수를 새로운 도시의 상징물로 내세운 곳은 서울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는 2001년 세계에서 가장 높이 물줄기가 올라가는 월드컵 분수를 만들었다. 성산대교 부근에 있는 이 분수는 물줄기 높이가 2002년 월드컵을 상징해 202미터다. 기존 세계 최고였던 미국 애리조나주 파운틴힐 분수의 170미터보다 32미터 높다. 여의도 63빌딩(247미터)에 육박한다.
서울시는 이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긴 분수를 선보였다. 반포대교를 상하류 각각 570미터씩 1140미터가 한강 아래로 물을 뿜는 거대한 분수로 만든 것이다. 지난해 말 영국 세계기네스 협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로 기록됐고, 올초 이름을 반포대교 분수에서 '달빛 무지개 분수'로 바꿨다.
포항시는 2007년 북부해수욕장에 세계 최초의 '해상 고사 분수'를 만들었다. 높이 쏘는(고사) 분수인데, 바다 위에 띄운다는 뜻이다. 담수호나 강에는 고사 분수가 있엇지만 해상 부유식 고사 분수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올해는 이런 특이한 기록을 내세우는 분수들이 여럿 선보이고 있다. 부산시 사하구는 13일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를 준공했다. 부산의 새 랜드마크로 만들었다는 이 분수는 '세계 최대의 바닥 분수'라는 점을 내세운다. 따로 수조를 만드는 일반 분수와 달리 그냥 바닥에서 물을 쏘는 분수로 세계 최대라는 설명이다. 한국기록원으로부터 대한민국 최대기록 공식 인증서를 받았고, 세계기네스 기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목포시도 10일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 음악분수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목포 평화공원 앞 바다에 길이 150미터 분사 높이 70미터인 초대형 분수를 띄울 계획이다. 적조 등으로 수질이 악화된 바닷물로 분수를 쏘아올리면 악취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지만, 목포시는 관광차원의 볼거리를 더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없는 곳을 찾는게 더 빠를 정도로 늘어난 인공폭포
2000년대 들어 부쩍 늘어난 인공폭포는 분수보다 훨씬 더 많이 생겼다. 최근 1~2년 사이에만 충북 영동군이 용두공원에, 전남 무안군이 회산 백련지에, 충북 제천시가 의림지에, 목포시가 부흥산 공원에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1979년 들어선 국내 최초 인공폭포인 서울 양화교 인공폭포가 높이 18미터, 폭 90미터로 당시 '동양최대'를 자랑했는데, 최근에는 높이면에선 명함도 내밀기 어렵게 됐다. 물을 끌어오지만 자연절벽을 이용한 반인공폭포인 강원도 정선군의 오장폭포는 높이 127미터이고, 백석폭포가 116미터, 강원도 인제군의 매바위 인공폭포(82미터), 경북 청송군 부동면의 탕건봉 인공폭포(62미터) 등이 이어진다.
경기 남양주시가 2005년 화도 하수처리장에 조성한 수직 높이 61미터 폭포의 경우 재활용 측면에서 평가를 받지만 대부분 경우 산을 깎아 만들고 있다. 또한 분수처럼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신기록을 앞세우며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6년 안양시가 병목안 시민공원에 조성한 인공폭포는 높이 65미터에 너비 95미터로 '국내 최대' 규모임을 자랑한다. 1997년 바위 절벽을 깎아 수직 높이 51미터로 만든 중랑구 용마공원의 용마폭포는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인공폭포 기록들은 조만간 깨질 전망이다. 강원도 양양군이 4월 '국내에서 가장 긴' 인공폭포를 만들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30억원을 들여 양양읍 임천리 통합정수장 주변에 2011년까지 경사면 길이 100미터, 수직 높이 80미터의 초대형 인공폭포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인천시 남구도 나섰다. 수봉공원 AID 아파트 지역을 2006년부터 14억원을 들여 철거하고 2007년 8월부터 53억원을 투입해 1단계로 높이 37미터 폭 78미터짜리 인공폭포를 조성했다. 앞으로 2단계로 폭을 110미터로 확장해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천차만별 비용, 유지비 감당될까
최근 유행하는 고사분수는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포항시의 해상 고사분수는 16억여원이 들었지만, 목포시가 추진 중인 해상분수는 160억여원이 들 전망이다. 서울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도 177억원이 들었고. 부산 다대포 낙조분수도 7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공사비 이상으로 유지비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달빛 무지개분수는 월 유지비용이 2100만원이 든다. 물을 끌어올리고 조명을 밝히는 데 드는 전기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산 다대포 낙조분수도 월 1500만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대포 분수대는 분수모양이 24종으로 담수량이 2040톤, 노즐수 1046개, 엘이디(LED) 조명이 511개나 되는 초대형이다. 사하구청은 ㎾당 95.9원인 여름 전기료 기준으로 하루 5시간 동안 분수대를 가동했을 때 소요되는 전기량을 하루 1000㎾로 예상하고 있다. 이럴 경우 한달 전기료만 280여만원의 기본료를 포함해 월 500만~600만원 정도다. 수도료는 한달 860만원대로 추정된다. 수돗물 1500톤을 원수로 쓸 예정이어서 한달에 4차례 물을 교체하면 모두 6000톤의 수돗물을 쓰게 된다. 전기료와 수도료만 합쳐도 1400만원을 넘어선다.
인공폭포도 사정은 비슷하다. 양양군은 계획 중인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에 3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타당성 용역조사 결과 공급용수와 막대한 사업비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주변에 문화유적 및 관광지가 없어 관광자원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사실상 폐기된 사례도 있다. 전북 진안군이 2005년 용담호에 설치한 높이 당시 자칭 170미터짜리 '동양 최대' 분수대다. 무려 40억원이 들어갔는데 설치 1년 만에 가동 중단 상태다. 수심이 낮고 수량이 적기 때문인데, 설치 전부터 타당성 논란이 있었으나 주민 숙원 사업과 관광객 유치 등을 이유로 강행해 세워졌다.
지자체들, 왜 분수에 열올릴까?
지자체들이 이처럼 너도나도 분수와 인공폭포 건설 경쟁에 나서는 것은 우리 실정에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수경공간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이 긴 한국에서는 물을 이용한 볼거리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조경계의 중론이다. 한 철 보기 시원하자고 나머지 기간 동안 특별한 볼거리도 없고 관리도 어려운 분수나 인공폭포를 만드는 것은 공간활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분수대와 인공폭포의 가동 시기는 제한적이다. 포항 고사분수대의 경우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가동 시간을 단축한다. 고비용 탓에 가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완성된 무안군 회산백련지의 인공폭포는 축제기간인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한달 반 동안만 가동했고 현재는 가동이 중단돼있다. 무안군 관계자는 "폭포 만든 첫해 전기·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축제기간에만 운영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분수와 인공폭포들의 조형성이 너무 천편일률적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분수와 폭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디자인 전문가인 김민수 서울대 교수는 "디자인 관련 사업이 지역주민들의 삶보다는 전시적이고 과시적인 행정 차원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볼거리 위주로 펼쳐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분수대든 인공폭포든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가 바탕이 돼서 지역의 정체성을 잘 말해주는 것들이 돼야 한다. 분수대나 인공폭포가 이런 지역 정체성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인스턴트 컵라면과 다를 바가 없다."
글 김진철 구본준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 한겨레 > 자료, 각 지자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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